잡상 (서유기 캐릭터, 방수 공학, 스카이라인)

경복궁 근정전 추녀마루 끝에는 삼장법사와 손오공, 저팔계를 포함한 소설 《서유기》 캐릭터들이 줄지어 앉아 있습니다. 저는 처음 이 사실을 알았을 때 그냥 재미있는 주술 장식이겠거니 했습니다. 그런데 파빌리온 루프 설계를 하다가 어느 날 다시 그 자리에 서고 나서야, 이게 단순한 장식이 전혀 아니라는 걸 온몸으로 실감했습니다.



서유기 캐릭터가 왜 지붕 위에 있을까

잡상(雜像)이란 점토를 빚어 고온의 가마에서 구워낸 특수 와제(瓦製) 장식물입니다. 와제란 기와를 재료로 구워 만든 제품을 뜻하는 건축 용어인데, 잡상은 그 가운데서도 궁궐 전각과 도성 사대문 같은 최고 등급의 관영 건축물에만 허용된 최상위 격식의 조형물이었습니다. 흔히 '어처구니'라고도 불리는 이 존재들,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현이 여기서 나왔다는 설도 있을 만큼 일반 민가에서는 볼 수도 없는 것들이었습니다.

맨 앞을 이끄는 인물은 삼장법사(대당사부)이고, 그 뒤로 손오공(손행자), 저팔계, 사오정, 마화상, 삼살보살, 이구룡 등이 차례로 도열합니다. 왜 하필 이 캐릭터들일까요? 목조 궁궐의 최대 적은 언제나 불이었습니다. 화재가 나면 지붕 꼭대기에는 물 한 바가지 퍼 올리기도 어렵습니다. 그러니 온갖 요괴를 퇴치하고 부처를 호위한 영험한 이들을 하늘과 맞닿는 지붕 끝 최전선에 배치해, 하늘에서 날아드는 화마(火魔)와 액운을 먼저 막아내겠다는 주술적 방재(防災) 심리가 깔린 것입니다.

잡상의 개수에도 엄격한 규칙이 있었습니다. 건물의 위계에 따라 달랐지만, 반드시 홀수를 지켰습니다. 음양사상에서 홀수는 양기(陽氣)가 강한 수로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국가 최고 의례 공간인 근정전에는 7개, 연회가 열리던 경회루에는 조선 궁궐 중 가장 많은 11개가 빈틈없이 도열해 있습니다. 숫자 하나도 그냥 정한 게 아니라는 뜻입니다. (출처: 문화재청)

방수 공학으로 풀어낸 잡상의 구조적 역할

솔직히 이건 제가 예상하지 못한 부분이었습니다. 야외 파빌리온이나 공공시설물 루프를 설계할 때마다 가장 끙끙 앓는 자리가 바로 모서리 접합부입니다. 풍압이 집중되어 마감재가 들뜨기 쉽고, 누수 하자의 8할이 그 취약부에서 터집니다. 알루미늄 플래싱과 실란트로 틀어막으면서도 늘 마음 한구석이 묵직했는데, 근정전 추녀마루를 다시 보는 순간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습니다.

추녀마루는 지붕의 네 경사면이 맞물리는 자리, 즉 빗물이 가장 집중되는 극도의 취약부입니다. 선조들은 이 자리에 적새(積새) 시공을 했습니다. 적새란 빗물이 틈새로 파고드는 것을 막기 위해 암키와를 여러 겹 겹쳐 쌓아 올리는 방식인데, 경사면을 따라 길게 쌓인 적새는 여름철 태풍이 불어닥칠 때 부압(負壓), 즉 기와를 위로 들뜨게 만드는 힘을 정면으로 받습니다. 잡상은 바로 이 적새의 가장 취약한 끝자락에 놓여 전체를 밑으로 꾹 눌러주는 자중(Dead Load) 가압재 역할을 합니다. 현대 건축으로 치면 하중 앵커(Weight Anchor)와 완전히 같은 원리입니다.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잡상을 기와 위에 올릴 때 단순히 얹어두는 게 아니라, 잡상 하부와 적새 기와 접합면에 석회와 백토, 마포를 이겨 만든 전통 반죽을 두껍게 밀어 넣어 밀봉했습니다. 이 밀봉 처리는 현대의 탄성 우레탄 실란트와 동일한 차수벽(遮水壁) 역할을 합니다. 차수벽이란 물의 침투를 막기 위해 설치하는 불투수 경계층을 뜻하는 방수 공학 용어입니다. 고성능 방수 테이프도 없던 시절에 이미 이 원리를 터득해 적용한 것입니다. 제가 직접 현장에서 이 구조를 살펴보고 나서야, 이게 단순한 공예품이 아니라 정교한 엔지니어링 결합체라는 확신이 섰습니다.

잡상이 수행하는 구조적 역할을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1. 자중 가압재: 추녀마루 끝 적새 기와를 무게로 눌러 태풍 시 부압에 의한 들뜸을 차단합니다.
  2. 접합부 밀봉재: 석회·백토·마포 반죽을 하부에 채워 폭우 시 빗물이 서까래와 흙(알판)으로 스며드는 것을 원천 차단합니다.
  3. 위계 표식: 개수를 홀수로 차등화하여 건물의 격식을 외부에 시각적으로 선언합니다.

기능만 놓고 보면 현대의 루프 엣지 파라펫(Parapet)과 실란트 조합과 구조적 목적이 정확히 일치합니다. 파라펫이란 지붕 끝단을 마감하면서 빗물 역류와 마감재 들뜸을 막기 위해 설치하는 낮은 벽 구조물을 뜻하는 현대 건축 용어입니다. 수백 년의 시간 차이가 있지만 접근 방식은 놀랍도록 닮아 있습니다.

스카이라인을 완성하는 시각 디자인의 정수

구조 역학 말고도 잡상이 해결하는 문제가 하나 더 있습니다. 야외 조형물이나 캐노피 구조물을 설계할 때 가장 경계하는 것 중 하나가 '상부 매스의 시각적 중압감'입니다. 지붕이 너무 둔탁하고 무거우면 건물 전체가 지상을 짓누르는 느낌을 줍니다. 수만 장의 묵직한 기와가 덮인 목조 궁궐도 이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았습니다.

제 경험상 이 문제는 디테일 하나로 전혀 다른 결과를 만들어냅니다. 팔작지붕의 처마 곡선은 완만하게 흘러내리다 끝에서 날렵하게 반전되는 아름다운 선입니다. 그 위에 일정한 간격으로 얹힌 작은 토우들이 지붕선에 율동적인 리듬감을 부여합니다. 검은 암기와 능선과 맑은 하늘이 칼로 자른 듯 맞닿으면 시각적 피로감이 커지는데, 잡상은 그 경계면 사이에 계단식 실루엣을 만들며 인공 구조물이 자연 배경 속으로 유연하게 스며들도록 중재하는 역할을 합니다. 이른바 점진적 전이(Gradual Transition) 기법입니다. 점진적 전이란 두 요소가 갑작스럽게 맞닿지 않고 단계적으로 이어지도록 연결부를 처리하는 조형 설계 원칙입니다.

기능을 해결하려다 미관을 해치거나, 디자인을 살리려다 방수·구조 안정성을 놓치는 딜레마를 저는 현장에서 수도 없이 겪었습니다. 누수를 막기 위한 커버나 하중 고정용 볼트 캡 같은 기능 부재들을 눈에 띄지 않게 숨기기에만 급급했던 것이 솔직한 고백입니다. 그런데 잡상은 이 질문에 가장 한국적이고 우아한 해답을 보여줍니다. 지붕에서 비가 가장 새기 쉬운 급소를 단단히 누르는 방수 공학적 해결책 위에, 화마를 막겠다는 절박한 염원을 얹었고, 그 염원을 다시 무시무시한 괴물이 아닌 익살스러운 서유기 캐릭터로 위트 있게 풀어냈습니다. 철저한 토목 역학 위에 해학과 예술성을 함께 버무려낸 조합입니다. (출처: 국립문화재연구원)

자주 묻는 질문

Q. 잡상은 어느 건물에나 다 있나요?

A. 아닙니다. 원칙적으로 궁궐 전각과 도성 사대문 같은 최고 등급의 관영 건축물에만 허용되었습니다. 일반 민가나 사찰 건물에서는 볼 수 없는 최상위 격식의 조형물이었기 때문에, 현재 볼 수 있는 잡상은 대부분 경복궁·창덕궁 등 왕실 관련 건물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Q. 잡상 개수가 건물마다 다른 이유가 있나요?

A. 건물의 위계에 따라 차등 적용되었고, 반드시 홀수로만 구성해야 했습니다. 음양사상에서 홀수가 양기를 상징하는 길한 수로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경복궁 근정전은 7개, 경회루는 11개로 조선 궁궐 중 가장 많습니다. 개수 자체가 건물의 격을 외부에 선언하는 시각적 위계 표식이었습니다.

Q. 잡상이 실제로 방수 효과가 있나요, 아니면 그냥 상징적인 장식인가요?

A. 둘 다입니다. 잡상은 추녀마루 끝 적새 기와를 무게로 눌러 태풍 때 들뜸을 막는 하중 앵커로 기능하고, 하부에 석회·백토·마포 반죽을 밀어 넣어 빗물 침투를 차단하는 밀봉재 역할도 합니다. 주술적 상징성과 토목 역학적 기능이 동시에 설계된 구조물이라고 보는 것이 정확합니다.

Q. '어처구니없다'는 표현이 정말 잡상에서 유래했나요?

A. 그 설이 있기는 하지만 어원에 대해서는 여러 의견이 공존합니다. 잡상이 궁궐 지붕에서 없으면 안 되는 존재였기에, 잡상이 없는 지붕을 보고 어처구니가 없다고 했다는 풀이가 꽤 널리 퍼져 있습니다. 다만 어원학적으로 확정된 정설은 아니므로 하나의 유력한 설로 이해하는 것이 좋습니다.

Q. 현대 건축 설계에서 잡상의 원리를 실제로 응용할 수 있나요?

A. 응용보다는 원리를 참고하는 방식이 현실적입니다. 모서리 접합부의 하중 앵커링과 탄성 실란트를 활용한 밀봉 처리는 이미 현대 루프 엣지 설계에서 동일하게 쓰이고 있습니다. 다만 기능 부재를 숨기기에 급급한 현대 설계와 달리, 잡상은 그 기능 부재 자체를 조형 언어로 승화시켰다는 점에서 디자인 접근 방식으로 배울 만한 지점이 있습니다.

경복궁 마당 어딘가에 서서 처마 끝을 한번 올려다보시겠습니까. 작고 익살스러운 그 흙인형들이 수백 년째 묵묵히 버텨온 자리가, 방수 하자가 가장 터지기 쉬운 바로 그 자리라는 사실이 보일 것입니다. 기능의 취약부를 미학적 조형으로 승화시킨 그 해법 앞에서, 모니터 앞에서 디테일 도면을 붙들고 끙끙 앓던 저의 고민이 어디를 향해야 하는지 전율하듯 와닿았습니다. 오늘 궁궐에 갈 기회가 생긴다면, 스마트폰 줌을 최대로 당겨 추녀마루 끝을 한번 들여다보시길 권합니다.

--- 참고: 네이버 문화재청 (https://www.cha.go.kr) 국립문화재연구원 (https://www.nrich.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