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궐 잡상 (서유기 도상, 건물 위계, 와정 방수)
솔직히 저는 몇 해 전까지만 해도 궁궐 지붕 끝에 줄지어 앉은 저 작은 조각들을 그냥 '장식품'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망원 렌즈로 당겨 보고 나서야 손오공과 삼장법사가 거기 있다는 걸 알았고, 그 순간 제 머릿속의 엄숙한 궁궐 이미지가 통째로 흔들렸습니다. 잡상(雜像), 혹은 상와(床瓦)라 불리는 이 흙인형 속에는 주술과 건축역학, 그리고 조선 장인들의 유머가 한꺼번에 담겨 있습니다.
지붕 위의 서유기: 잡상이 품은 도상학적 질서
경복궁 근정전 추녀마루 끝을 처음 카메라로 당겨 봤을 때, 저는 한동안 렌즈에서 눈을 떼지 못했습니다. 웅크린 원숭이, 튀어나온 주둥이의 돼지, 그 앞에 단정히 앉은 승려 형상. 아무리 봐도 《서유기》 속 인물들이었습니다. "그냥 비슷하게 생긴 것 아닐까"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탁지준공도형(度支竣工圖形)』 같은 조선 시대 고문헌 기록을 찾아보고 나서야 이게 우연의 일치가 아니라는 걸 확신했습니다.
도상학(圖像學, Iconography)이란 미술 작품 속에 담긴 상징과 의미 체계를 연구하는 분야입니다. 잡상의 배치에는 이 도상학적 질서가 철저히 적용되어 있습니다. 추녀마루 맨 앞자리에는 대당사부(大唐師父), 즉 삼장법사가 가사를 걸치고 정좌해 있습니다. 불법의 힘으로 사악한 기운을 정화하는 선두 지휘자입니다. 그 바로 뒤에 손행자(孫行者), 다시 말해 손오공이 전방을 주시하며 몸을 낮추고 있고, 그다음으로 저팔계(猪八戒)와 사화상(沙和尙)이 뒤를 잇습니다.
제가 특히 흥미롭게 본 건 사화상, 즉 사오정의 위치였습니다. 목조 건물의 최대 적은 불입니다. 사오정은 강과 물을 다스리는 수신(水神)의 상징성을 지니는데, 조선 장인들은 그 수신을 화마(火魔)에 대항하는 수호자로 지붕 위에 올려놓은 겁니다. 단순히 소설 캐릭터를 올린 게 아니라, 각 인물의 신화적 속성까지 계산한 배치입니다. 그 뒤로는 이귀박, 이구룡, 마화상, 삼살보살, 천산갑, 나토두 같은 신수(神獸)들이 줄을 서서 하늘에서 날아드는 잡귀를 감시합니다.
명나라 소설 《서유기》가 왜 조선 궁궐 지붕에 올라갔느냐는 질문에 대해, 당시 조선이 명나라 문화권 안에서 활발하게 문물을 교류하던 시기라는 점을 배경으로 이해하면 자연스럽습니다. 다만 단순한 수입이 아니라, 각 인물의 주술적 의미를 재해석해 조선의 건축 문법에 맞게 재배치했다는 점이 저는 더 인상적이었습니다. (출처: 문화재청)
숫자로 읽는 건물 위계: 잡상 개수의 엄격한 규칙
답사를 여러 차례 다니면서 저는 전각마다 잡상 개수를 세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처음에는 그냥 손으로 꼽아보는 정도였는데, 숫자에 패턴이 있다는 걸 눈치채고부터는 메모를 시작했습니다. 잡상은 반드시 홀수로만 설치됩니다. 3, 5, 7, 9, 11개. 짝수는 없습니다.
음양오행(陰陽五行) 사상에서 홀수는 양(陽)의 수로, 생명력과 길함을 상징합니다. 짝수인 음(陰)의 수와 대비되는 개념으로, 궁궐처럼 왕의 권위와 국가의 번영을 담아야 하는 공간에 홀수만 쓴 건 이 세계관에서 당연한 선택이었습니다. 주요 건물별 개수를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 창덕궁 경훈루 — 11개 (현존 조선 궁궐 중 최다, 왕실 내전 최고 격식)
- 경복궁 경회루 — 11개 (외국 사절 접견 및 국가 연회용 2층 누각)
- 창덕궁 인정전 — 9개 (창덕궁의 중심 정전)
- 서울 숭례문 — 9개 (하층 8개, 상층 9개, 국보)
- 경복궁 근정전 — 7개 (조선 왕실 으뜸 정전, 상하층 지붕 마루 기준)
여기서 저는 처음에 좀 의아했습니다. 조선 최고 정전인 근정전이 7개인데, 경훈루나 경회루가 11개라는 게 선뜻 납득이 되지 않았습니다. 정전의 위상이 더 높아야 하는 것 아닌가, 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을 텐데, 저도 처음엔 같은 의문을 품었습니다. 알고 보니 잡상 개수는 건물의 정치적 서열만이 아니라 지붕 규모와 추녀마루의 길이까지 복합적으로 고려된 결과였습니다. 경회루와 경훈루는 2층 누각이라 지붕 자체의 규모가 압도적으로 큽니다.
또 한 가지, 조선 시대에는 아무리 부유한 사대부라도 개인 살림집 지붕에 잡상을 올리는 것이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었습니다. 잡상은 궁궐의 정전과 침전, 그리고 도성 4대문 같은 국가 시설에만 허용된 건축적 신분증이었던 셈입니다. 지붕 끝에 흙인형 하나를 올릴 수 있느냐 없느냐가 곧 그 건물의 정체성을 드러냈다는 게, 지금 생각해도 꽤 서늘한 규칙입니다.
주술이 아니라 공학이기도 했다: 와정 보호와 누수 차단의 원리
잡상을 단순히 '액막이 장식'으로만 보는 시각도 있는데, 저는 그 해석이 절반만 맞다고 생각합니다. 현장에서 직접 오래된 한옥 지붕 보수 현장을 들여다본 적이 있는데, 추녀마루(내림마루) 끝단이 얼마나 구조적으로 취약한 부위인지를 보고 나서야 잡상의 또 다른 역할이 실감나게 다가왔습니다.
추녀마루란 팔작지붕의 네 모서리에서 사선으로 뻗어 내려오는 마루선을 말합니다. 이 부위는 여러 겹의 기와가 겹쳐지는 접합부로, 바람을 가장 강하게 받고 빗물이 스며들기 가장 쉬운 구조적 약점입니다. 와정(瓦釘)이란 이 경사진 추녀마루 끝의 기와가 미끄러져 내려오지 않도록 박아 고정하는 쇠못을 뜻합니다. 문제는 이 못 구멍이 빗물의 침투 경로가 된다는 점입니다. 못 구멍으로 물이 스며들면 그 아래 서까래와 추녀목이 서서히 썩어 들어갑니다.
장인들은 못을 박은 자리에 마루적심토, 즉 진흙과 회반죽을 혼합한 방수층을 두껍게 바르고, 그 위에 잡상을 얹어 눌렀습니다. 무거운 점토를 구워 만든 잡상의 자중(自重)이 마루 끝을 눌러주어 강풍에 기와가 들뜨는 것도 막고, 동시에 방수 마감재를 단단히 밀봉하는 하중재 역할도 수행한 겁니다. 제 경험상 이건 예상 밖의 발견이었습니다. 주술과 구조역학이 하나의 오브제 안에 공존한다는 게, 현대 건축의 관점에서도 꽤 세련된 발상입니다.
국립문화재연구원의 한옥 수리 기준 자료에 따르면 추녀마루 부위는 전통 목조 건축에서 가장 빈번하게 보수가 이루어지는 취약 부위로 분류됩니다. (출처: 국립문화재연구원) 조선 장인들이 이 부위를 보강하기 위해 구조적 해결책과 상징적 의미를 동시에 담은 잡상을 배치한 건, 실용과 미학을 나누지 않았던 그들의 사유 방식을 잘 보여줍니다.
서양 고딕 성당의 가고일(Gargoyle)과 잡상을 비교하는 시각도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결이 조금 다르다고 봅니다. 가고일이 보는 이를 압도하고 위협하는 방향이라면, 잡상은 둥글둥글하고 해학적입니다. 저 먼 서역으로 떠나는 소설 속 여행자들에게 궁궐 수호를 맡긴 선조들의 위트가, 두려운 재앙도 이야기 속에 녹여내는 방식이었다는 점에서 잡상은 조선의 유머를 품은 건축 언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잡상은 왜 꼭 홀수 개로만 설치되나요?
A. 동양의 음양오행 사상에서 홀수는 양(陽)의 수, 즉 생명력과 길함을 상징합니다. 왕실과 국가의 번영을 담아야 하는 궁궐 건물에 짝수인 음의 수를 쓰는 건 맞지 않는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3개부터 11개까지 건물의 위계에 따라 엄격하게 차등 적용되었습니다.
Q. 현존하는 조선 궁궐 중 잡상이 가장 많은 건물은 어디인가요?
A. 창덕궁 경훈루와 경복궁 경회루가 각각 11개로 현존 최다입니다. 두 건물 모두 2층 누각이라 지붕 규모 자체가 커서 더 많은 잡상을 올릴 수 있었습니다. 잡상 개수는 건물의 정치적 서열만이 아니라 지붕의 물리적 규모도 반영된다는 점에서, 단순히 위계 순서대로 매긴 숫자가 아닙니다.
Q. 일반 사대부 집에는 왜 잡상을 올릴 수 없었나요?
A. 조선 시대에는 궁궐의 정전과 침전, 도성의 4대문 같은 국가 공공 시설에만 잡상 설치가 허용되었습니다. 아무리 부유한 양반이라도 개인 살림집 지붕에 잡상을 올리는 건 법적으로 금지된 행위였습니다. 잡상은 그 자체가 왕실과 국가 권위를 드러내는 건축적 표식이었기 때문입니다.
Q. 잡상과 가고일(Gargoyle)은 어떻게 다른가요?
A. 기능 면에서는 둘 다 액막이와 빗물 처리라는 실용적 역할을 공유합니다. 그러나 표현 방식이 다릅니다. 서양 고딕 성당의 가고일이 험악하고 기괴한 형상으로 위협을 주는 방향이라면, 조선의 잡상은 소설 속 인물을 해학적이고 둥글둥글하게 빚어냈습니다. 두려운 존재를 이야기 속에 녹여 웃음으로 보듬는 방식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Q. 잡상의 순서, 즉 어떤 인물이 몇 번째에 오는지는 어디서 확인할 수 있나요?
A. 조선 시대 고문헌인 『탁지준공도형(度支竣工圖形)』과 『상와도(床瓦圖)』에 잡상의 도상과 배치 순서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맨 앞이 대당사부(삼장법사), 그다음이 손행자(손오공), 저팔계, 사화상(사오정) 순입니다. 아래에서 육안으로는 구분이 어렵기 때문에, 망원 렌즈나 고해상도 사진과 함께 이 문헌 기록을 대조해보는 걸 권합니다.
다음에 궁궐을 찾을 기회가 생긴다면, 화려한 단청보다 먼저 지붕 끝을 올려다보시길 권합니다. 망원 기능이 있는 카메라나 스마트폰 줌으로 추녀마루 끝을 당겨보면, 수백 년 전 장인이 빚어놓은 손오공과 삼장법사 일행을 직접 만날 수 있습니다. 주술과 공학과 해학이 한 지붕 끝에 공존하는 풍경은, 제 경험상 설명 없이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인상 깊습니다.
